어린이날 오전, 구립양로원에서 봉사활동을 마친 두 아이를 태우고 동태탕을 파는 식당에 들렀다. 이곳은 국물이 시원하고 얼큰해서 아이들도 흔쾌히 따라나섰던 곳이다. 사장님이 바뀐 게 마음에 걸렸지만······. 휴일 이른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식당 안에는 손님이 없었다. 쭈그러진 노란 양은 냄비 안에 동태탕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앞 접시에 동태탕을 덜어 맛을 보니 국물의 간이 맞질 않았다. 육수는 밍밍하고 텁텁했다. 그냥 맹물에 동태를 끓인 느낌이었다. 식당 주인에게 소금을 달라, 다진 양념을 가져달라 온 가족이 부산을 떨었지만 십 리까지 달아난 입맛은 밥 한 그릇을 다 비우는 동안 결국 돌아오질 않았다. 카드를 내밀고 계산을 하면서 ‘내가 끓여도 이보단 맛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진짜로 동태탕을 끓여볼 생각이었다. 마트 생선판매대에 가보니 손질하지 않은 러시아산 절단 동태가 있었다. 막상 집에 사 오긴 했는데 손질하기 막막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결국 동태는 식탁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냉동실에서 그야말로 ‘동태’로 남았다. 아마도 다른 냉동식품에 둘러싸여 당분간 빛을 보기는 어려울 듯싶다. 녀석이 내게 텔레파시라도 보내는지 불현
수원 팔달문에 있는 박 약사가 약대에 들어가면 장학금을 지원해줄 테니 나중에 본인의 약국에 와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을 때도 사랑스러운은 수녀가 되겠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약사의 말을 전해준 건 그녀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외가 쪽으로 먼 친척뻘 되는 대머리 국어 선생님이었다. 사랑스러운은 마치 인생 상담을 해주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같았다. 먼 동네까지 입소문이 나자 그녀는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 안에 상담실을 마련하고 예약제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녀의 부모님은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라며 ‘유 사랑스러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녀와 한 번이라도 상담했던 동네 사람들은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즉문즉답과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카페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그녀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찾아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밤새 소리 없이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낮부터 강한 비바람으로 돌변해 카페 창문에 들이치고 있었다. 카페 문을 닫기 위해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을 때, 회색 보더 스커트에 검은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비에 젖은 채 문밖에 떨고 있었다.
여름날 늦은 오후, 온종일 찜통 같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바람이라도 쐬어 볼까 하고 창문을 열었다. 아파트 뒤편에 즐비하게 자리 잡은 주택들의 옥상에는 형형색색의 빨래들이 널려있었다. 그리고 아파트 3층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주택의 옥상에 한 여학생이 빨래를 걷으러 올라왔다. 그녀가 입은 파란색 스커트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 이후로 나는 자주 그녀가 사는 집의 옥상을 내려다봤다.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은 책상에 앉아 있기보다 옥상에 올라오는 그녀의 모습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애써 떨쳐보려고 교회학교 선생님이 들려줬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저녁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목욕하던 밧세바를 보았던 다윗왕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다윗이 있어야 할 암몬과의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혼자 예루살렘 궁 안에 머물렀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모님을 떠올리며, 이건 훔쳐보는 거라고,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마음먹을수록 나의 시선은 옥상에 긴 시간 동안 머물곤 했다. 여름 장마로 며칠째 그녀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어느 날, 아침에 민망한 일이 생겼다. 속옷이
당신이 잠든 사이 혜승은 어두운 아파트 층계를 따라 2층 현관문 앞에 섰다. 새끼손톱만 한 모기떼들이 새까맣게 콘크리트 천정을 점령하고 있는 게 못마땅했다. 문이 열리기만 기다렸다가 집안에 들어갈 기회만 엿보고 있는 놈들이었다. 그는 녀석들이 들어오거나 말거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광수와 인나 부부가 거실에서 그를 맞이해줬다. 그는 말할 기운조차 없어서 눈인사만 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광수 부부는 3년 전부터 그의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채로 그는 침대 위로 쓰러졌다. 셔츠 소매에 Dr. Jung이라고 자수로 새겨 있었다. 온몸이 멍석말이를 당한 것처럼 쑤셨다. 타이레놀이 든 약상자가 있는 주방 선반까지 가는 건 죽기보다 싫다고 생각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잠든 사이 누군가 석고를 목구멍에 조금씩 밀어 넣어서 좌﹡우측 폐에까지 잔뜩 채워진 석고가 열을 내며 굳어가는 것 같았다. 숨이 멎었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발작적인 기침을 해댔다. 혜승은 잠시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때, 거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혜승 씨 말이야, 아들한테 좀 심하지 않아
문인회는 올해 초 두 번의 문학기행을 기획했다. 지난 6월, 첫 문학기행을 “대마도를 다녀온 조선통신사 후예들”이란 테마로 다녀왔다. 두 번째는, 수연산방에서 길상사까지, ‘성 바깥 북쪽 동네’ 성북동 문학기행(10월 6일)이었다. 최초의 치과의사 함석태의 흔적을 찾기 위해 성북동을 답사한 협회사 편찬위원장 변영남 원장님이 안내를 맡아주셨다. ‘수연산방(壽硯山房)’은 성북구 성북동 248번지에 있다.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11호로 지정된 곳이다. ‘수연’은 벼루가 다할 때까지 글을 쓰겠다는 뜻이다. 해방 전 ‘운문은 지용, 산문은 상허’라는 명성을 얻었던 이태준의 옛집으로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살면서 많은 문학작품을 집필한 곳이다. 현재는 이태준의 외증손녀가 전통찻집으로 운영 중이다. 수연산방에 들어서니 젊은 연인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있었다. 안내된 방안에 3단 장식장 맨 위 칸에는 이태준의 ‘문장강화’, ‘상허문학독본’ 고서가 전시돼 있었다. 1939년 10월 29일에 있었던 이태준의 집들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뒤뜰을 액자에 고스란히 담은 쪽문에 시선이 머물렀다.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든 화단에는 토란, 담쟁이 넝쿨, 그리고 선홍색 꽃들이 석등과 함
매년 겨울이 시작되면 너는 스마트폰의 날씨 앱(application)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겨울 날씨는 변심한 애인의 마음처럼 변화무쌍하다. 기온이 영하 7℃ 이하로 내려가면 너는 퇴근 전에 7개의 세면대 중에서 안전하다 싶은 몇 개를 골라 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도록 수도꼭지 손잡이를 미세하게 조절하느라 무척이나 애를 먹는다. ‘또로로록’ ‘또로록’ ‘또록’ ‘똑, 똑, 똑……’ 물이 방울져 세면대 바닥에 일정한 간격으로 굴러떨어질 때까지 수도꼭지 손잡이를 들었다 내리기를 무한 반복하는 것이다. 벌써 퇴근준비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직원들은 네가 나오기만을 아까부터 간절히 기대하고, 기다리고, 또 기도하고 있다. 너는 그런 직원들의 마음에 온통 신경이 쓰인다. 직원들의 눈치를 살피면 살필수록, 너는 세면대 앞을 쉬이 떠나지 못한다. 세면대 바닥 제일 깊은 곳에 동그란 휠 모양의 물막이 장치를 세로로 세워 놓고 물이 잘 흘러내려 가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너는 여전히 그 자리를 떠나지를 못한다. ‘혹시라도 물이 고여 넘치진 않을까’라며 수차례 머릿속으로 물이 내려가 하수관을 빠져나가는 시뮬레이션을 반복해본다. 이때쯤이면 광야에서 한 외치는 소리가
대한치과의사문인회 회원들이 11월 7일, 8일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으로 가을문학기행을 다녀왔습니다. 1박 2일로 진행된 문학기행 첫째 날 특별강연 연자로 김영훈 시인이 ‘아름다운 시 창작’에 관해 일목요연한 강의를 해주셨고, ‘아버지’란 주제로 여러 시인의 작품을 회원들이 번갈아 읽어보며 시 창작에 관한 기본기를 다졌습니다.특별강연을 마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신덕재 회원의 ‘나’, ‘틈새’임용철 회원의 ‘사월에’, ‘아득하니’라는 자작시 낭송이 이어졌습니다.정원에는 낙엽을 잠재우는 가을비가 내리고 거진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다내음과 어슴프레한 시간들과 간간히 들리는 웃음소리로 마음이 촉촉하게 힐링되는 시간이었습니다.문학기행 둘째 날 특별강연 연자로는 김영진 회원의 ‘세종에서 성종시절까지의 조선사탐구’에 관한 특별강연을 들었습니다. 6권의 참고서적을 읽고 준비한 강연이었던 만큼 해박한 역사에 관한 지식과 재미난 야사까지 두 배로 즐거운 조선사탐구강연이었습니다. 흥미로운 특별강연이 끝나고 가을과 마주하러 화암사에 갔습니다. 가을비속에서 젖어 있는 형형색색의 운치 있는 단풍나무들과 제법 많은 강수량으로 생명력을 되찾은 계곡물이 요란스레 이합집산하는 풍경이 절로
회색빛 바구니가 달려 있고 변속기어가 없으며 검은색 각진 플라스틱 손잡이와 빛바랜 회색안장 그리고 앞바퀴와의 마찰력으로 전기를 만들어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빈티지(vintage) 스타일의 다홍색 자전거. 우리 아버지가 생전에 타시던 자전거이다.아버지의 유품이라 생각하니 녹이 슬어 있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는데도 왠지 친근하다작년 추석명절에 일이다. 추석이면 으레 온가족이 한상 가득 차려서 먹고 마시며 밥상을 치우는게 일이다. 추석특선영화도 재미없고 집안에 있기엔 볕이 너무 좋아서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엄마! 집에 혹시 탈만한 자전거 없어요?” 송편을 빚으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타시던 자전거가 헛간에 있다고 하신다. ‘아버지가 타시던 자전거가 남아 있었나?’ 기억을 더듬으며 헛간에 가보니 여기저기 녹슬고 거미줄이 잔뜩 진을 치고 있는 자전거가 한 대 웅크리고 있다. 헛간 터줏대감인 누렁이는 외부인의 방문이 마뜩잖은지 연신 짖어댄다. ‘이게 주인집 막내도련님을 몰라보고. ’자전거를 꺼내 마당에 세워 놓으니 9년간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아버지가 쓰셨던 물건에 대해서 관심을 갖거나 찾으려 애써 본적이